“갑자기 뭔 소리야.”
상대가 웃었다. 내 웃음이었다. 밤마다 전화를 받고, 그 덕에 나쁜 일을 피하던 사람의 웃음.
“수연이 아직 안 왔지.”
“내일 온다니까.”
“그러니까. 내일 오면 열어 줘. 집에서 재워. 택시 못 타게 해.”
나는 말을 너무 빨리 하고 있었다. 숨을 고르며 시계를 봤다. 2분 30초가 남아 있었다.
상대의 방에서 펜 뚜껑 닫는 소리가 났다.
“사고 나?”
“응.”
그 말을 하는 순간 냉장고 소리가 멎었다.
나는 부엌 쪽을 봤다. 천장 등은 켜져 있었다. 냉장고 표시창도 밝았다. 압축기가 우연히 멈춘 거라고 생각했다.
“택시 타고 큰길 교차로 지나다가. 그러니까 여기서 재워. 할 말 있다고 했잖아. 들어 줘. 걔 정직원 됐어.”
상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가 어떻게 알아?”
“내가 내일에 있으니까.”
말을 마치고 나서야, 며칠 전 누군가 내게 똑같이 대답했다는 걸 떠올렸다.
“알았어. 재우면 되잖아.”
창밖 불빛이 꺼졌다.
한 집씩 꺼지지 않았다. 맞은편 건물 전체가 한꺼번에 없어졌다. 가로등도, 그 뒤로 보이던 병원 간판도 사라졌다. 유리창에 비친 내 방만 남았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잠깐.”
“왜.”
커튼을 걷었다. 유리에 손바닥을 붙였다. 바깥이 어두운 것과는 달랐다. 유리 바로 뒤에 검은 종이를 붙여 놓은 것 같았다.
첫날 전화가 떠올랐다. 내가 왼쪽으로 가겠다고 하자, 상대편에서 사라졌던 소리. 의자가 넘어지고, 가지 말라고 하던 목소리.
나는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그 손목이 부러진 나는 이 일을 먼저 겪었다.
“야, 왜 말 안 해.”
수화기 속 목소리가 커졌다.
“거기 무슨 일 있어?”
나는 현관으로 걸어갔다. 센서등이 켜지지 않았다. 걸쇠를 풀고 문을 조금 열었다.
복도가 없었다.
손잡이를 잡은 손이 떨렸다. 문 바깥으로 손을 내밀어 보려다가, 하지 않았다. 복도 바닥이 있어야 할 자리에 문턱 너머로 검은 것이 평평하게 붙어 있었다. 떨어질 곳조차 보이지 않았다.
“수연이 재운다고 했지.”
내가 물었다.
“어. 그런데 너…….”
“꼭 그래.”
나는 문을 닫았다. 신발장 위에 놓인 장바구니가 사라져 있었다. 귤 한 개가 떨어졌던 자리를 기억했는데,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물건들이 이 방까지 올 일이 없어졌기 때문일까.
아직 내게는 수연이 죽은 기억이 있었다. 택시 안에서 들었던 목소리도, 영수증 뒷면의 글씨도 그대로였다. 나만 살아 있는 수연이 있는 쪽으로 가지 못하고 있었다.
금요일에 나를 찾아왔던 목소리가 왜 문을 열지 말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수연이 돌아간 밤에 서 있었다. 자기 뒤에서 집이 없어지는 것을 봤을지도 모른다. 어제의 내가 다른 선택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나보다 먼저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더러 기다리라고 했다.
열 시 십육 분까지.
나는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다. 조금 전까지 그를 만나면 죽여 버리고 싶었다. 지금은 그가 왜 그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01
.“지금 어디야?”
어제의 내가 물었다.
“집.”
“수연이는?”
나는 방 안을 돌아봤다. 책장 맨 위에 놓인 사진 액자가 비어 있었다. 사진의 하얀 뒷면이 보이는 게 아니었다. 액자 안에도 창밖과 같은 검은 것이 있었다.
“내가 있는 데서는 죽었어.”
상대가 숨을 멈췄다.
“하지만 거기는 아니야. 너는 열어 주면 돼.”
잠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상대의 냉장고 소리를 들었다. 어디선가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아직 길이 있는 집이었다.
그 뒤로 낮은 기침이 들렸다.
이번에는 수화기 안이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현관문 아래쪽, 검은 틈에서 소리가 났다.
“처음이야?”
내 목소리였다.
다른 쪽에서도 부스럭거렸다. 식탁 아래에 누가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다리를 뒤로 뺐다.
“전화 끊지 마.”
여러 번 들었던, 코 막힌 목소리가 말했다.
“끊기면 여기서 기다려야 돼.”
“뭘.”
내가 묻자 어제의 내가 되물었다.
“뭐가?”
그에게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쪽의 목소리는 계속 말했다.
“다음 전화. 누가 또 과거에 걸 때까지. 그때 소리 지르면 가끔 저쪽에서 들어.”
“얼마나…….”
“시계가 안 가.”
나는 벽시계를 봤다. 초침은 움직였다. 아직은.
“내가 여기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어.”
식탁 아래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현관 너머에서는 누군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제발. 제발. 제발.
전화가 올 때마다 한 명씩 더해진 목소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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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내 말 들려?”
어제의 내가 말했다.
“뭐라도 말해 봐. 신고해 줄까?”
나는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주소를 말해 줘도 그는 어제의 경찰을 부를 것이다. 그 경찰은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내 방에 올 것이다.
“전화.”
신발장 쪽에서 목소리가 났다.
“저쪽이 다시 걸면 돼.”
나는 휴대폰을 세게 쥐었다.
“그러면?”
“네가 걸어 둔 쪽으로 줄이 나 있어. 저쪽에서 되걸어야 잡아당길 수 있어.”
“나갈 수 있어?”
대답이 늦었다.
“그렇게 나간 놈은 있어.”
나는 수화기에 입을 댔다.
“한 번만 다시 걸어 줘.”
말을 하고 나서 입술이 차가워졌다. 내가 녹음에서 몇 번이나 들었던 문장이었다.
“끊고, 이 번호로 바로. 11시 20분 되기 전에.”
“왜. 너 지금…….”
“부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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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가까이에서 다른 목소리가 소리를 질렀다.
“하지 마!”
나는 고개를 돌렸다. 어두워진 부엌에서 무언가가 식탁 모서리를 긁고 있었다. 손톱 같은 소리였다.
“걔가 대신…….”
나는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방 안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커졌다. 휴대폰 화면만 밝았다. 나는 그것을 두 손으로 감쌌다.
벨이 울렸다.
내 번호였다.
받기 버튼 아래에 비친 얼굴을 봤다. 내 얼굴이었지만 입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유리 안쪽의 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 입 모양은 분명했다.
받지 마.
MARGIN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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