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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내가 오늘 밤마다 전화를 건다 — 3화. 열 시 십육 분

토요일 밤, 수연이 문을 두드렸다. 나는 현관 안쪽에서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에 수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오지 마.”

“왜?”

“몸이 좀 안 좋아.”

“그러니까 반찬 갖다주지. 문 앞에 두고 갈게.”

“오지 말라고.”

내 목소리가 너무 컸다. 수연은 조용해졌다.

“알았어. 안 가.”

끊고 나니 괜찮아졌다. 오지 않으면 문을 열 일도 없었다. 나는 물을 끓이고, 싱크대에 쌓인 그릇을 씻었다. 프라이팬 바닥에 붙은 기름때를 철수세미로 밀었다. 닦을 것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점심을 먹고는 수연에게 미안하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답은 오지 않았다. 원래 화가 나면 한동안 답을 하지 않았다.

오후 네 시쯤 전화했다. 받지 않았다.

다섯 시에는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수연이 토요일에 일하는 카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직원은 오늘 마감 근무라고 했다. 휴대폰 충전기가 고장 나서 카운터에 맡겨 뒀다는 말도 해 줬다.

“무슨 일 있으세요? 바꿔 드릴까요?”

나는 잠깐 망설이다 괜찮다고 했다. 일을 하는 중이었다. 많은 사람이 있는, 환한 곳에 있었다.

밤 아홉 시가 지나자 모든 시계를 맞췄다.

전자레인지는 2분 빨랐다. 벽시계는 40초쯤 느렸다. 평소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차이였다. 나는 의자에 올라가 벽시계를 내리고, 휴대폰 초침을 보면서 배터리를 다시 끼웠다.

9시 47분에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의자를 제자리에 놓다가 멈췄다.

“오빠.”

현관에서 수연의 목소리가 났다.

“나야.”

나는 발소리가 나지 않게 현관으로 갔다. 인터폰 화면을 켰다. 수연이 한 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카페에서 쓰는 검은 앞치마가 가방 밖으로 조금 나와 있었다.

수연은 카메라를 올려다봤다.

“불 켜져 있던데. 자?”

나는 통화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가 나왔다. 화면 속 수연은 주머니에 손을 넣지도 않았다.

그게 당연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충전기가 고장 났다는 말을 직접 들었다.

그런데 어젯밤의 목소리가 더 가까웠다.

수연이라고 해도.

수연이 문을 두드렸다. 두 번, 조금 쉬었다가 한 번.

나는 걸쇠를 잡았다.

“안 자는 거 알아. 화났어?”

쇠가 차가웠다. 엄지손가락으로 걸쇠 끝을 밀면 열리는 문이었다. 고작 2센티미터였다.

“아침에 오지 말라고 했잖아.”

내 목소리가 갈라졌다.

수연은 문에 조금 가까이 붙었다.

“왜 그래? 많이 아파?”

“가.”

“얼굴만 보고. 나 다음 주부터…….”

“가라고.”

복도에서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났다. 누군가 지나가는지 수연이 잠시 옆으로 비켰다. 나는 화면을 봤다. 옆집 남자가 택배 상자를 들고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수연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남자도 인사했다.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견딜 수 없었다. 미래를 안다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내가 문을 열어서 무슨 일이 생기면, 여기서 알면서도 연 사람은 나였다.

“오빠.”

수연이 목소리를 낮췄다.

“나 돈 빌리러 온 거 아니야.”

나는 눈을 감았다.

“문 앞에 둘게. 반찬 상하니까 금방 넣어.”

비닐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났다. 얼마 뒤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다시 울렸다.

인터폰 화면에서 수연이 사라졌다.

9시 54분.

나는 현관에 주저앉아 숫자가 바뀌는 것을 봤다. 10시가 되면 조금 나을 줄 알았다. 10시가 되어도 똑같았다. 10시 10분에는 밖에서 구급차가 지나갔다. 나는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았다.

10시 16분이 되었다.

기다렸다.

10시 17분.

나는 걸쇠를 풀었다.

문 앞에 장바구니가 있었다. 반찬통 두 개와 귤 한 봉지. 흰 봉투도 들어 있었다. 삼십만 원과 함께 접힌 영수증이 나왔다. 영수증 뒷면에 볼펜으로 글씨가 적혀 있었다.

나 정직원 됨. 첫 월급. 이제 안 빌린다 ㅋㅋ

맨 아래에는 다른 펜으로 한 줄이 더 있었다.

좀 열어 주지.

나는 장바구니를 든 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아파트 입구까지 뛰어 내려갔지만 수연은 없었다.

버스정류장에도 없었다. 택시가 서는 큰길까지 갔다. 멀리 교차로 쪽으로 차들이 밀려 있었다. 파란 불빛이 건물 벽에 번졌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나는 받지 않았다. 수연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내 음성이 끝나기도 전에 끊고 다시 걸었다.

모르는 번호가 두 번째로 울렸을 때 받았다.

상대는 내 이름을 확인했다. 수연의 이름도 확인했다. 그 사람이 말을 천천히 해서, 나는 몇 번이나 다음 문장을 먼저 물었다.

수연은 내 아파트 앞에서 택시를 탔다.

사고는 큰길 끝 교차로에서 났다.

마지막으로 살아 있는 것이 확인된 시각과, 내가 현관문 앞에서 기다린 시각이 같았다.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금요일의 녹음을 틀었다.

문 열지 마.

수연이라고 해도.

그때까지만 참아.

처음 들었을 때는 나를 지키려는 말이었다. 지금은 내가 수연을 집 밖에 두도록 시간을 재 주는 말이었다.

나는 앞좌석 등받이에 이마를 댔다.

기사님이 괜찮으냐고 물었다. 괜찮지 않다고 대답해야 했는데, 입을 열면 토할 것 같았다.

휴대폰 화면 위로 시간이 보였다.

11시 2분.

나는 녹음을 껐다. 통화 기록을 열었다. 내 번호가 다섯 줄 있었다.

어제의 내가 있었다.

수연에게 오지 말라고 하지 않은 나. 금요일 밤, 식탁에 앉아 내일을 기다리던 나.

“돌아가 주세요.”

기사가 룸미러를 봤다.

“네?”

“탔던 데요. 집으로.”

어머니에게서는 아직 전화가 오지 않았다. 곧 올 것이다. 병원에도 가야 했다. 하지만 그 전에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었다.

나는 녹음 속에서 거의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끊은 전화에 다시 걸지 마.

누가 한 말인지 몰랐다. 지금은 따를 이유가 없었다.

집에 들어왔을 때는 11시 14분이었다. 현관문이 덜 닫혀 있었다. 반찬 장바구니를 문 사이에 둔 채 뛰어나갔던 것이다. 나는 장바구니를 신발장 위로 올리고 문을 잠갔다.

식탁에 앉았다.

11시 16분 50초.

통화 기록에서 내 번호를 눌러 놓았다. 발신 버튼만 남았다.

57초.

58초.

59초.

화면 위에 수신 알림이 잠깐 떴다. 내일의 내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나는 알림을 밀어내고 발신 버튼을 눌렀다.

연결음이 한 번 울렸다.

“내일 수연이 오는 거…….”

내가 어제 했던 말이었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이상하게도, 안심이 가장 먼저 왔다. 목소리만 들었는데 금요일 식탁이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방.

“잘 들어.”

신발장 위 장바구니에서 귤 하나가 굴러 나왔다. 바닥에 떨어져 문턱까지 갔다. 나는 그것을 주우러 가지 않았다.

전화 속에서 어제의 내가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나는 문턱 앞에 멈춘 귤을 봤다.

통화 화면의 02

, 02
바뀌었다.

할 말은 하나뿐이었다.

“내일 수연이 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문 열어 줘.”

MARGIN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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