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누구 있어?”
“아니.”
“방금 누가 말했는데.”
상대는 잠깐 듣는 듯하더니, 자기도 어제 같은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전화가 정상은 아니잖아. 섞이나 봐.”
“뭐가 섞여.”
“몰라. 내가 통신사 직원이냐.”
그 대답이 오히려 마음을 놓이게 했다. 나라도 모르는 일에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는 회의 이야기를 들었다. 부장이 잡아 놓은 납기보다 거래처의 인쇄 일정이 이틀 빠졌다. 금요일을 약속하면 목요일 밤을 회사에서 보내게 된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회의실 나올 때 부장한테 거래처 메일 다시 보시라고 해. 뒤에 정정 메일 왔어.”
“알았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너 방금 일정 바꾸기로 했냐?”
“응.”
“아.”
그 짧은 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나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상대는 괜찮다고 했다. 전화는 정확히 11시 20분에 끊겼다.
다음 날 부장은 메일을 확인한 뒤 내 어깨를 두드렸다. 덕분에 살았다고 했다. 회사에 다닌 지 4년 만에 처음 듣는 말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내가 한 일이 거의 없었다.
나는 점심을 먹다가 웃었다.
수요일의 전화는 목요일 오후에 올 배송을 알려 줬다. 업체가 사무실 주소를 옛 주소로 잘못 입력했으니 오전에 연락하라고 했다. 목요일에는 이중 결제된 세탁비를 돌려받았다. 삼만 이천 원이었다.
내일을 아는 일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복권 추첨일은 아직 멀었고, 내일의 나도 주식을 잘 몰랐다. 대신 잃어버릴 우산을 챙기고, 화낼 일을 미리 피했다. 주문할 메뉴까지 물어본 적도 있었다.
“비빔국수 먹지 마.”
“왜, 배탈 나?”
“맛없어.”
그날은 둘 다 웃었다.
수연에게 전화가 온 건 목요일 저녁이었다.
“토요일에 집에 있어?”
“왜.”
“집에 있냐고 먼저 물었잖아.”
“아직 몰라.”
주말 약속은 없었다. 그런데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밤에 물어본 다음에 정하는 게 편했다.
수연은 엄마가 보낸 반찬이 자기 집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빌려 갔던 삼십만 원도 같이 주겠다고 했다.
“계좌로 보내.”
“현금으로 받았어. 그리고 오빠한테 할 말도 있고.”
“무슨 말.”
“가서 할게. 늦을 수도 있어.”
나는 내일 알려 주겠다고 했다.
“집에 있는지도 내일 돼야 알아?”
수연이 웃었다. 나는 같이 웃지 못했다.
목요일 밤에는 식탁에 휴대폰 두 대를 놓았다. 쓰던 폰과, 서랍에 넣어 뒀던 예전 폰이었다. 예전 폰의 녹음기를 켜고 전화를 스피커로 받았다.
“수연이 토요일에 온대.”
“나는 아직 금요일이야. 토요일 일은 몰라.”
“그냥 네 생각을 물은 거야.”
“네 생각이 내 생각이지.”
잠깐 할 말이 없어졌다. 예전에는 혼잣말을 하는 편이 아니었다. 요즘은 내 목소리를 들어야 마음이 놓였다.
“너도 매일 전화 받아?”
“응.”
“그런데 왜 나한테 거는 거야?”
“네가 물어봤잖아. 내일 환불 들어왔는지 알려 달라고.”
나는 메모장을 넘겼다. 어제 통화 끝에 그렇게 말했었다. 상대는 그 부탁을 받은 채 하루를 산 나였다.
“어떻게 걸었어?”
“11시 17분에 내 번호. 낮에는 안 되고, 그때만 돼.”
“그러면 내일의 너한테서 오는 전화는?”
“내가 먼저 걸면 안 오더라. 통화 중이니까 그런가.”
메모에 적었다. 하루에 한 번. 자기가 먼저 걸면 어제에게, 기다리면 내일에게. 어느 쪽이든 11시 20분까지.
그 뒤로 상대가 택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낮은 기침 소리가 두 번 들렸다. 상대는 기침하지 않았다. 말하는 중이었다.
나는 볼펜으로 종이에 점을 두 개 찍었다.
“저 소리 또 들려.”
“신경 쓰지 마.”
“누군가 갇혀 있는 것 같아.”
상대는 대답을 늦게 했다.
“너 피곤해서 그래. 오늘은 일찍 자.”
전화를 끊고 녹음을 재생했다. 내 목소리 두 개가 번갈아 나왔다. 방 안에서 나는 목소리가 더 크고, 스피커에서 나는 목소리는 조금 찢어졌다.
그 아래, 세 번째 목소리가 있었다.
몇 번을 되돌려 듣고 나서야 문장을 알아들었다.
“한 번만 다시 걸어 줘.”
나는 재생을 멈추고 통화 기록을 열었다. 손가락이 번호 위로 갔다.
녹음에서는 내가 정지 버튼을 잘못 눌렀는지, 아직 작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걔 말 듣지 마.”
조금 더 가까운 목소리였다.
“끊은 전화에 다시 걸지 마.”
나는 번호에서 손을 뗐다.
금요일에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주문을 두 번 바꿨다. 오후에는 잘 아는 거래처에 보내는 메일을 써 놓고도 전송하지 못했다. 날짜가 맞는지, 어투가 괜찮은지, 내일 무슨 문제가 생길지 계속 확인했다.
밤 11시 17분만 기다렸다.
수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내일 아홉 시 반쯤 갈게. 반찬 냉장고 비워 놔.
나는 알겠다고 답했다. 밤에 취소할 수도 있었지만 일단 그랬다.
그날 전화는 울리자마자 받았다.
“내일 수연이 오는 거…….”
“문 열지 마.”
목소리가 낮았다. 바깥에서 바람이 부는 것처럼 거친 소리가 섞였다.
“뭐?”
“토요일 밤에 누가 와도 열지 마. 수연이라고 해도.”
나는 예전 폰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왜. 무슨 일 있어?”
“내가 시키는 대로 해. 현관에 걸쇠 걸고, 방에 들어가 있어.”
“수연이 온다니까.”
“알아.”
상대가 숨을 삼켰다. 혀로 입안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 같은, 젖은 소리가 났다.
“알아서 하는 말이야.”
나는 의자를 뒤로 밀었다. 소리가 크게 났다.
“걔한테 무슨 일 생겨?”
“네가 문 열면.”
“뭐가 생기는데.”
“말하면 네가 밖으로 나갈 거잖아.”
상대는 나를 잘 알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몸이 서늘해졌다.
나는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식탁 위의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허리를 구부리고 있었다.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도 숨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살아 있어?”
대답이 없었다.
“너 있는 데서. 수연이 살아 있냐고.”
멀리서 금속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 너머로 누군가가 무슨 말을 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상대가 아주 작게 말했다.
“열 시 십육 분.”
“…….”
“그때까지만 참아.”
나는 시계를 봤다. 금요일 밤 11시 19분이었다. 내 손바닥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 뒤에는 열어도 돼?”
상대는 한참 있다가 대답했다.
“그 뒤에는 안 두드려.”
MARGIN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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