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번호로 걸려 온 전화라서 받았다.
모르는 번호였으면 무시했을 것이다. 그날도 카드사에서 세 번, 인터넷을 바꿔 준다는 곳에서 두 번 전화가 왔다. 내 번호를 누군가 잘못 건드린 줄 알았다.
밤 11시 17분이었다. 나는 싱크대 앞에서 냉동만두 봉지 뒷면을 읽고 있었다. 전자레인지로 조리하면 맛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프라이팬을 씻는 일이 더 싫었다.
“여보세요.”
상대는 한동안 숨만 쉬었다. 코가 막힌 사람처럼 입으로 짧게 들이마셨다.
“만두 내려놔.”
나는 베란다 쪽을 봤다. 맞은편 건물은 창문마다 커튼이 쳐져 있었다. 주방 블라인드를 내리지 않은 건 내 쪽이었다.
“누구세요.”
“전자레인지에 돌려. 어차피 프라이팬 안 씻을 거잖아.”
장난을 칠 만한 사람은 동생 수연밖에 없었다. 그런데 남자 목소리였다. 어디선가 들어 봤지만 처음에는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내 목소리는 내가 듣는 것보다 훨씬 납작했다. 예전에 면접 연습을 녹음했다가 바로 지웠던 기억이 났다.
나는 만두를 내려놓았다.
“너 누구야.”
“내일의 너.”
웃음이 나왔다. 상대는 웃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수연이가 베란다에 갇혔어. 네가 문 잠갔지. 엄마한테는 저절로 잠겼다고 했고.”
나는 식탁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걸 어떻게 알아.”
“수연이가 유리를 두 번 두드리고, 쉬었다가 한 번 더 두드렸어. 울면 네가 더 안 열어 줄까 봐 울지도 못했어.”
의자 다리 끄는 소리가 상대편에서도 났다. 내가 낸 소리보다 반 박자 늦었다. 통화가 울리는 모양이었다.
“걔한테 들었어?”
“수연이는 그날 기억 못 해. 너만 기억하지.”
나는 반박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수연에게 물어본 적은 없었다. 기억하지 않기를 바랐던 건 맞았다.
“지금부터 잘 들어. 내일 출근할 때 편의점 앞에서 길 건너지 말고, 처음부터 왼쪽 인도로 가.”
“뭐?”
“8시 42분에 냉장 탑차가 후진해. 편의점 앞 파란 천막 기둥을 치고. 너는 소리 듣고 돌아보다가 오른손을 짚어.”
“…….”
“손목만 부러진 줄 알았는데 엄지손가락 감각이 안 돌아와. 지금도.”
무언가 비벼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닐인지 옷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내 오른손을 폈다. 만두 봉지를 잡았던 손가락 끝에 성에 녹은 물이 묻어 있었다.
“미래에서 전화할 수 있으면 로또 번호를 알려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오늘 화요일이야. 추첨 안 했어.”
내 방 달력은 월요일이었다.
“내일 딱 하루만 보여?”
“보이는 게 아니라, 내가 여기 있다고.”
상대가 처음으로 짜증을 냈다. 그 말투는 익숙했다. 내가 고객센터에서 같은 설명을 세 번째 할 때 내는 목소리였다.
통화 화면을 봤다. 숫자가 이상했다. 통화 시간이 늘어나는 대신 줄어들고 있었다.
00
.00
.“이거 시간이 왜 이래?”
“3분이 다야. 11시 20분 되면 끊겨. 다시 걸어도 그날은 안 돼.”
“통신사에 알아봤어?”
“제발. 왼쪽으로 가겠다고만 해.”
나는 잠깐 생각했다. 손해 볼 일은 없었다. 길 건너편으로 걷는 데 무슨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알았어. 왼쪽으로 갈게.”
상대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 뒤로 이상할 만큼 조용해졌다. 조금 전까지 들리던 낮은 웅웅거림이 사라졌다. 냉장고나 환풍기 같은 소리였는데, 꺼지고 나서야 있었다는 걸 알았다.
“잠깐.”
상대가 말했다.
“왜 이러지.”
“뭐가.”
“밖에 좀…….”
00
.의자가 넘어졌다.
00
.“야, 가지 마.”
전화가 끊겼다.
나는 한동안 휴대폰을 귀에 붙이고 있었다. 다시 전화를 걸자 통화 중이라는 안내가 나왔다. 두 번 더 걸어도 같았다.
만두는 결국 먹지 않았다. 냉동실에 돌려놓으면서 봉지 집게를 찾았는데, 오른손으로 서랍을 뒤지는 일이 어쩐지 불편했다.
다음 날, 나는 평소와 같은 시간에 집을 나왔다.
편의점 앞까지 가는 길은 오른쪽 인도가 그늘이었다. 왼쪽은 햇빛이 정면으로 들어왔다. 나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 한 번을 더 기다렸다. 고작 그 일 때문에 지각하게 생겼다.
8시 41분.
반대편에서 편의점 직원이 생수 상자를 옮기고 있었다. 파란 천막도, 탑차도 있었다. 그 편의점에는 거의 매일 같은 차가 왔다. 누군가 내 출근길을 알고 있으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휴대폰으로 차를 찍었다. 사진을 찍는 동안에는 내가 멍청한 짓을 한다는 느낌이 조금 덜했다.
기사가 운전석 문을 닫았다.
짧은 후진 경고음이 두 번 울리고, 철판을 주먹으로 치는 듯한 소리가 났다. 차 뒤쪽이 천막 기둥을 밀었다. 기둥은 생각보다 쉽게 꺾였다. 천막 아래 세워 둔 입간판이 넘어지면서 바닥을 긁었다.
내가 늘 지나가는 자리였다.
직원은 생수 상자를 놓친 채 소리를 질렀다. 기사는 차에서 내려 기둥과 범퍼를 번갈아 봤다. 다친 사람은 없었다.
휴대폰 위에 8시 42분이 떠 있었다.
나는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을 잡았다가, 반대로 잡았다.
회사에는 배탈이 났다고 했다.
그날 밤에는 11시부터 식탁에 앉아 있었다.
휴대폰 배터리는 100퍼센트였다. 충전선을 뺐다가 다시 꽂았다. 어제의 통화 기록은 남아 있었지만, 번호를 눌러 보면 언제나 통화 중이었다.
나는 메모장에 물어볼 것을 적었다.
어떻게 거는지. 어디서 알았는지. 어제 마지막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11시 16분이 되자 메모장을 닫았다. 화면을 다른 것으로 채워 두면 전화를 놓칠 것 같았다.
정각에 울렸다.
“왼쪽으로 갔어.”
나는 여보세요 대신 말했다.
“알아.”
목소리가 달랐다. 같은 내 목소리였지만 코가 막히지 않았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다행이다. 손은 어때?”
“무슨 손?”
“오른손. 어제 감각 없다고 했잖아.”
상대가 잠시 조용해졌다.
“아. 그 전화.”
“그 전화라니.”
“나도 받았지. 그래서 왼쪽으로 갔고.”
나는 식탁에 펼쳐 놓은 메모를 봤다. 첫 질문 옆에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그럼 어제 나한테 전화한 건 누구야.”
“너.”
“그건 아는데, 걔는 다쳤다며.”
“네가 오늘 안 다쳤잖아.”
상대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말했다.
“그런 내일은 없어진 거지.”
나는 펜을 들었다. 손목이 멀쩡했다. 손가락도, 손가락으로 누른 종이도 아주 선명했다. 이상한 일인 건 분명했지만 결과는 좋았다. 물어볼 일이 많아도 순서를 정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럼 지금은 수요일이고?”
“응. 내일 회의 때 부장이 일정 물어보면, 금요일이라고 하지 말고 다음 주 화요일이라고 해. 이유는 내가 설명…….”
상대의 말 뒤로 다른 목소리가 겹쳤다.
처음에는 텔레비전인 줄 알았다. 아주 작았고, 멀리서 들렸다.
“여기.”
내 펜이 멈췄다.
코가 막힌 사람처럼 입으로 짧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
“나 아직 여기 있어.”
MARGIN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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